신약 시대의 시간, 계절, 연월일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마 20:1-6).
성경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 기록이나 뉴스 기사가 아니기에 모든 사건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말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사건이 일어나는 시각이 언급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시간의 표현은 이야기의 전개나 성경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신학적 주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간단한 예로,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30) 또는 “그[니고데모]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요 3:2)와 같은 구절들이다.
성경에는 동틀 무렵, 아침, 정오, 황혼, 저녁, 밤처럼 비교적 단순한 시간 단위들뿐 아니라 좀 더 정확한 시간을 표현하는 단위들도 등장하는데, 이런 시간 단위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체계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더구나 신구약성경이 아우르는 역사적 시기는 근 천 년에 달하므로 성경 내에 등장하는 시간 표기 체계는 하나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주변 문화들의 영향을 받거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포로 생활까지 한 민족인 만큼, 유대 사회의 시간 체계는 변천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체계가 혼재돼 사용되기도 했다.
신약 시대의 시간 개념을 보여 주는 증거 자료가 성경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내의 자료들과 아울러 그 외 문헌이나 유물들을 종합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날
먼저, 구약성경만 보더라도 ‘날’의 계산은 일출을 기점으로 하는 방법과 일몰을 기점으로 하는 방법 두 가지가 모두 나온다. 전자의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로는 하루를 언급할 때 아침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 저녁을 말하거나(신 28:67; 삼상 30:12; 사 28:19; 렘 33:20; 느 1:6), 그밖에 아침에 하루가 시작함을 암시하는 구절들(삿 15:4-9; 삼상 19:11; 28:19; 레 7:15-16)이 있다.
그러나 예배나 절기와 같이 공식적인 활동을 언급하는 구절들에서는 거의 하나같이 저녁이 하루의 기점이 된다. 예를 들어 (1)출애굽기 12:6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이 저녁에 시작해 일주일 후 저녁에 끝난다든지, (2)레위기 23:32은 대속죄일(욤 키푸르)이 저녁에 시작한다고 지정하며, (3)정결례에 관한 규정들(레 11:24-28; 15:1-12, 16-24; 22:1-9)도 부정한 시기가 끝나는 시점이 저녁이라고 말하고, (4)느헤미야 13:19을 보면 ‘안식일의 시작은 어둠이 깔리면서’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예배나 축제가 저녁에 시작한다는 언급은 쿰란 사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 신약성경(막 15:42; 눅 23:4-56; 요 19:31-42)의 증거와도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공적인 활동에서는 저녁이 기점이 돼 날을 계산했으며, 일상적으로는 일출을 기점으로 하루를 계산했을 수도 있다.
성경에는 하루보다 더 작은 단위의 시간을 구분하는 표현들도 나타난다. 구약에서 밤 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초저녁, 한밤중, 새벽(초경, 이경, 삼경) 등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낮 시간의 구분은 나오지 않는다.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에 이에 관한 언급들이 있다. 우선 하루 낮 시간이 12시간으로 구분되고(요 11:9), 동틀 때부터 시작해 세 시간 단위로 대략적인 시간을 표시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주인은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십일시에 장터에서 무직자들을 고용해 모두에게 같은 노임(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 오늘날로 하면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5시와 같은 식이다. 밤 시간은 세 시간씩 네 개의 단위로 구분했는데, 예를 들어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가오신 시각을 “밤 사경쯤”이라고 하는데(막 6:48), 이는 새벽 3-6시를 이른다.
한편 요한복음의 시간 체계가 나머지 세 복음서(공관복음)의 그것과 다른가의 문제는 오래 논란이 돼 왔다. 앞서 언급한 두 공관복음 구절에서 낮 시간의 시작, 즉 0시는 오전 6시를 말하는데, 이는 유대식 시간 계산법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4시간제와 동일한 로마식 시간을 사용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1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시각이 다르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5:25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각이 “제삼시”이고 운명하신 시각이 “제구시”로서, 각각 오전 9시와 오후 3시를 가리킨다. 그런데 요한복음 19:14에는 총독 빌라도가 이미 상당 시간 동안 예수님을 심문하고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유죄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후 재판석에 앉은 시각이 “제육시”로 나오는데, 이를 공관복음과 같이 유대식 시간으로 계산할 경우 정오가 된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시각과 운명하신 시각이 나오지 않지만, 공관복음 기록과 조화를 이루려면, ‘제육시’는 유대식이 아닌 로마식으로 이해해서 오전 6시로 봐야 한다.
그런데 본문의 맥락을 보면, 18:27에 이미 닭이 울었고(베드로의 부인), 그다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끌고 가며, 때는 “이른 아침”이라고 말한다(28절). 그 후 빌라도는 총독관저 안팎을 왔다갔다 하며 유대인들, 예수님과 번갈아 가며 대화를 나눈다. 중간에 군인들의 채찍질도 있었고 가시관과 홍포를 씌워 모욕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고 나서 최종 선고를 내리기 위해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은 시각이 ‘제육시’라면, 닭 울고 나서 그토록 많은 일들이 일어난 후 시각이 여전 오전 6시밖에 안 됐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유대식을 따라 정오로 보고, 단 정확히 정오라기보다는 대략적인 시간으로 이해해 사형 선고 후에 골고다로 이동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각과 조화를 이루도록(예를 들어 빌라도의 판결이 10시쯤, 십자가 형 집행이 11시쯤)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요한복음이 로마식 시간제가 아닌 유대식 시간제를 사용했다는 근거는 요한복음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1:39에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머물고 계신 곳을 보고 그날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는데, 그 시각이 “열 시”였다. 이를 로마식을 따라 오전 또는 오후 10시로 보기보다는 유대식을 따라 오후 4시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에 들어가셨을 때 여행으로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신 시각이 “여섯 시”쯤이었다(6절). 이를 로마식으로 하면, 오전이나 오후 6시이고 유대식으로는 정오다.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기 좋은 시간인 오후 6시보다는 아무도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정오의 뙤약볕 아래에서 예수님과 그 여인, 단 둘의 대화가 일어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사건의 개연성으로나 본문의 신학적인 의미로나 더 자연스럽다.
또한 갈릴리 가나에서 두번째 표적을 행하실 때 예수님은 왕의 신하를 만나 그의 아들에 관한 탄원을 듣고 즉시로 말씀으로 그를 고쳐 주시는데, 왕의 신하가 돌아가다가 그의 종들로부터 아이가 살아난 시각이 “어제 일곱 시”였음을 듣는다(요 4:51-52). 이 경우에 가버나움에서 가나, 다시 가나에서 가버나움으로의 여정 그리고 왕의 신하가 느꼈을 사태의 다급함을 염두에 둘 때 오후 7시와 오후 1시 어느 쪽이든 개연성은 있다. 다만 앞서 요한복음 11:9에서 예수님이 하루(낮) 12시간의 개념을 언급하신 점과 시간 표현이 나온 구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요한이 공관복음과 마찬가지로 로마식보다는 유대식 시간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주와 달
성경에서 일곱 날을 하나의 단위로 치는 ‘주’의 개념은 매우 일찍부터 확립된 제도였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되는 날은 쉬도록 한 것은 창조 시에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고 또 인간에게 요구하신 우주적 계명이며, 출애굽해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제칠일은 ‘안식’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렸다(히브리어로 안식일은 그냥 ‘안식’이다).
‘달’은 성경에 자주 나오기는 하되,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한 달을 계산했는지 또 달과 연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성경의 자료만을 근거로 할 때 세 개의 달력 체제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가나안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이른 시기에 이웃 가나안 민족들로부터 배운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네 개의 가나안식 달 이름이 나온다. 아빕(출 13:4; 23:15; 34:18; 신 16:1, ‘첫째 달’), 시브(왕상 6:1, 37, ‘둘째 달’), 에다님(왕상 8:2, ‘일곱째 달’), 그리고 불(왕상 6:38, ‘여덟째 달’)이다. 이런 가나안 달력은 한 해가 봄철에 시작하는 체제다.
두 번째 달력 체제는 특정한 명칭 대신 서수를 달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체제인데, 이는 주로 바벨론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는 부분들에서 나타난다(열왕기-앞의 가나안 달력 명칭들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 역대기, 에스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오경)에 나타나는 달력 체제도 이와 동일하며, 이스라엘이 준수해야 할 절기의 날짜들도 이 달력에 의거해 정확하게 계산돼 있다. 가나안력과 마찬가지로 한 해는 봄에 시작하며, 달의 수는 열둘이다. 한 달의 길이는 달의 차고 기움에 따라 계산되므로 대략 29와 1/2일이다. 이렇게 되면 태양력과 차이가 나게 되고, 계절의 변화를 따라 진행되는 파송과 추수의 시기와도 어긋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음력이 양력과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이를 메우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윤달’을 가지게 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달력 체제는 바벨론력이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스가랴 등에 달의 이름이 나오는데 니산(느 2:1; 에 3:7), 시완(에 8:9), 엘룰(느 6:15), 기슬르/기슬래(느 1:1; 슥 7:1), 데벳(에 2:16), 스밧(슥 1:7), 아달(스 6:15; 에 3:7, 13; 8:12; 9:1, 15, 17, 19, 21) 등이다. 이들은 모두 바벨론에서 쓰던 달의 이름과 흡사하다. 탈무드(j. Rosh. Hash. 1.56d)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이 달의 이름들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바벨론력도 기본적으로는 음력으로, 봄을 기점으로 한다.
결국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세 개의 서로 다른 달력 체계는 모두 음력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한 달의 시작과 끝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나 각 달의 길이가 같은지 다른지, 특히 농사력과의 조율을 위해 윤달을 사용했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3. 해
1년의 길이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하고 있으며, 한 해가 언제 시작하는지에 대한 자료들은 서로 엇갈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한 해의 기산점에 관해서는 가을이 한 해의 시작이라는 표현과 봄을 새해의 기점으로 계산하는 표현들이 혼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바벨론 포로기 이전(추계 신년)과 이후(춘계 신년)로 나누거나 남유다 왕국(추계 신년)과 북이스라엘 왕국(춘계 신년)으로 나누어 이해하기도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
미쉬나(m. Rosh. Hash. 1.1)에 보면, “네 개의 ‘설날’들이 있다. 니산월 1일은 왕과 절기들을 위해, 엘룰월 1일은 가축의 십일조를 위해, 티쉬리월 1일은 외국 왕들, 희년, 초목의 파종을 위해, 스밧월 1일은 과수를 위해”라고 할 정도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다양한 ‘신년’ 계산법이 존재했던 것 같다. 출애굽기 34:18-24에는 절기 규정이 나오는데, 무교절이 아빕월(가나안력으로 첫째 달, 봄의 시작) ‘정한 때,’ 그리고 가을에 밀 추수를 마치고 저장하는 수장절은 “한 해가 끝날 때”라고 규정한다. 즉 한 해가 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난다는 것이다. 이는 농사력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개념이다.
한편 바벨론력이 도입된 시기에 기록된 예레미야 36:9, 22에는 아홉째 달이 겨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첫째 달이 봄에 와야 한다. 그러나 느헤미야 1:1(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 아홉째 달)과 2:1(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 첫째 달)을 놓고 보면, 니산월이 됐는데도 해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은 봄의 첫째 달인 니산이 한 해의 기산점이 아님을 암시한다. 랍비 유대교(주후 2-5세기)로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일곱째 달(태양력으로는 9-10월) 1일을 한 해의 기산점으로 삼고 있는데, 느헤미야서는 이런 체제에 맞는 듯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레위기 25:8-9은 희년의 시작이 일곱째 달 10일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바벨론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에서 한 해의 시작을 봄과 가을로 삼았다는 기록이 공존하며, 포로기 이후에는 비록 바벨론력을 따라 니산월을 첫째 달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가을(일곱째 달 1일)이 신년이 되는 제도를 채택해 갔다. 물론 이 모든 달력은 하나같이 음력이기 때문에 농사력 그리고 농사력과 연계되는 절기력과 맞추기 위해서는 윤달이 필요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제2성전기 유대 문헌 가운데 364일을 1년으로 삼는 태양력을 채용한 증거들이 있다는 것이다. 에녹서(the Book of Enoch)와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 그리고 사해 사본 중 성전 두루마리(the Temple Scroll)를 보면 (앞의 두 문헌 역시 다른 몇몇 지역들과 아울러 쿰란 동굴에서도 발견됐다) 1년을 364일로 계산해 그에 따라 절기와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쿰란 공동체는 초기 유대교 3대 분파 중 에세네파가 중심이 된 공동체 집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 중에는 제사장 출신들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예루살렘 성전의 권력을 잡고 있는 다른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 불법에 항의하면서 광야로 나와 사해 동쪽 쿰란 언덕 암벽들에 생활-신앙 공동체를 건설한 이들 에세네파는 364일 체제를 근거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올바른 날짜와 때에 절기를 지키는 것을 공동체의 큰 자부심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2 이들이 채용해 준수한 양력 달력 체제가 주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유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나 광범위하게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과 초대 교인들의 동시대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364일 달력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4. 유대 달력과 부활절
유대인들이 미쉬나 시대(2세기)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다듬어 사용하는 달력은 음양력(lunisolar calendar)으로 음력을 기반으로 양력의 요소를 가미한, 즉 윤달 체제를 가진 달력이다. 기본적으로 한 달이 29일 또는 30일(달의 차고 기움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 한 달을 29일이나 30일로 고정하지 않고 따로 계산해 변경하게 됨)인데, 이렇게 되면 1년이 약 354일 정도가 된다. 양력과의 차이 문제는 19년을 주기로 제3, 6, 8, 11, 14, 17년에 아달월(열두 번째 달)을 하나씩 더 가짐으로써 해결한다(동양의 음력에서 사용하는 ‘19년 7윤법’도 같은 원리다). 이런 달력 체제 아래에서는 유월절(니산월 14일)이 반드시 춘분 다음에 오게 돼 있어서 농사력, 절기력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유대인의 시간, 달력 체제와 아울러 우리 교회의 절기를 결정하는 교회력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부활절 날짜의 결정이다. 부활절 날짜는 매년 변하는데, 이를 결정하는 근거는 춘분(3월 21일) 이후 처음 오는 만월(보름달) 다음 처음 오는 주일이다. 이렇게 산정한 결과 부활절이 올 수 있는 날은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인데 금년에는 4월 24일이었으므로 부활절이 늦게 온 해에 속한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이 방법은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전체)에서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동방 교회(그리스, 러시아, 기타 정교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결정한다. 이 계산법의 배경에는 부활절이 유월절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신학적 의미를 보존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유대인들이 준수하는 유월절 계산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윤달 체제가 결합된 음양력에 기준한)과 기독교인들이 계산한 유월절(윤달 체제가 아닌 단순히 춘분과 만월이라는 요소만으로 결정한) 사이에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의 유월절(니산월 14일)을 그대로 부활절로 지킨 사람들도 있었지만(Quartodeciman, 요한 사도의 제자였던 에베소의 주교 폴리캅 등) 결국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으로 지금은 한 날에 온 교회가 부활절을 축하한다.
‘언제가 정확한 유월절인가’ 하는 문제는 기독교 신앙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본질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복음의 의미를 잘 새기고 공동체의 덕과 평화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신앙생활의 형식적인 측면들을 결정하고 함께 따르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운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처럼, “너희는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하루 제사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여라. 이런 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골 2:16-17, 사역)
5. BC와 AD
마지막으로,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고, 또 신학적 의미까지도 담고 있는 AD(라틴어, anno domini)와 BC(영어, before Christ)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이 죽은 해가 BC 4년(영어로 표기할 때는 BC 4는 틀리며, 4 BC가 맞다. 또한 AD 4가 맞고 4 AD는 라틴어 어법상 틀린 것인데 요즘은 많이 쓰이므로 용인된다)인데, ‘주전(主前)’ 6-4년경에 주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더구나 ‘Anno Domini’라는 개념과 계산법은 서기 527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황제들의 재위년(regnal years)들을 자료로 사용해 계산해 낸 역법인데, 이를 731년 영국의 신학자이며 역사가인 베다(Veda Venerabilis)가 《영국 국민의 교회사(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라는 작품에서 채용함으로써 처음 서구 세계에 소개됐고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유포됐다. 오늘날 영미권에서는 비기독교인들(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BC/AD 대신 BCE(before the Common Era)/CE(Common Era)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BC와 AD가 여전히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때문에 그 두 용어에 얽힌 기원을 염두에 두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자이시다. 시간은 때로는 심오한 신학적, 인격적 의미를 전달하는 모티프로 사용된다.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는 유대 문화 혹은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나타난다. 그 각각의 배경과 기원을 이해할 때 우리는 시간표현으로부터 상징 또는 교리를 이끌어 내는 과도한 해석의 오류(the fallacy of over-interpretation)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와 신학]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