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교회의 원형
우리가 초대교회를 좀 자세하게 뒤돌아보고 있는 것은 교회의 원형이 거기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교회를 거기 따라 비교도 하고 개혁도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초대교회를 돌아볼 때 항상 받는 시험은 그 박해를 받던 시절의 교회가 그렇게 순수하고 성령의 감동이 넘치고 뜨거운 신앙으로 불타던, 그런 황금의 시대로 회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신앙의 선인들을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실제 교회는 처음부터 이상하게도 선과 악이 함께 있는 아말감이었다. 그 전형적인 경우가 고린도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신앙적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가누지 못할 허물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까지 도전하고 있었다. 요한 3서에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얼마나 악한 일을 하면서 착한 신도들을 교회에서 추방하였는지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선을 행하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교회 안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 있는 교회가 그 정도라고 해서 후세의 교회가 그들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
입법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악이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여러 공의회를 통해서 작성하고 공포하였던 항목들을 보면 당시 교회의 모습을 실상 그대로 살펴 볼 수 있다. 그것들을 보면 우리는 물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오히려 교회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르게 하여 더욱 진지한 자세를 갖추게 하는 것이어서 고맙게 여긴다.
가령 한 가지만 꼭 기억해 두자. 밀라노에서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얼마 전에 스페인의 엘비라에서 공의회가 열렸다. 거기 보면 당시 신앙인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들의 신앙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구나 할 만한 사건들이 즐비하다. 박해 속에서 숭고한 신앙은 더욱 드높이 빛났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연약한 신앙인들의 가련한 모습도 더욱 눈에 띄었다. 그런 일들이 그대로 기록되고 있다.
박해가 끝났을 때 교회문은 배교한 사람들의 발길로 넘쳤다. 무서워서 그랬던지, 아니면 그럴 듯한 타협으로 그랬던지,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무리들이다. 주교들까지 있었다. 다 다시 되돌아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교회는 이들을 다 받아들였다! 회개한 무리들을 받아들였다. 교회는 성도들의 의와 순결로 거룩해지는 곳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거룩해지는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교회가 그 이후의 세대가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기구로서 출발하였다면, 그 이후의 교회 역사는 패러독스로 가득 찬 형태로 있다가 결국 살아져 없어졌을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